해피 띵호와
2023. 6. 23. 15:43
도사영지(倒屣迎之)
짚신을 거꾸로 신고 맞이하다, 손님을 환영하다.
[넘어질 도(亻/8) 짚신 사(尸/11) 맞을 영(辶/4) 갈 지(丿/3)]
손님은 빚쟁이 아닌 다음에야 반갑다.
‘손님을 후대하는 사람은 신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는
서양 격언이 있을 정도로 손님맞이에는 정성을 다한다.
그 손님이 능력을 가진 사람일 땐 더욱 공손할 수밖에 없다.
중국 초기 周(주)나라의 제도를 완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周公(주공)의 인재 맞이는 유명한 고사로 남아있다.
현인이 찾아왔을 때는 머리감을 때나 식사 중일 때라도
중단하고 맞았다는 吐哺握髮(토포악발)이 그것이다.
그보다 앞서 夏(하)나라 시조인 禹(우) 임금은
한 끼 식사 중에도 열 번이나 일어나 찾아온 손님을 맞았다는
一饋十起(일궤십기, 饋는 먹일 궤)란 말도 있다.
손님이 왔을 때 너무나 당황하여 덤비다 짚신을 거꾸로 신고
(倒屣) 맞았다(迎之)는 이 성어도 아주 반가웠기 때문이다.
倒屣迎客(도사영객)으로도 쓰는 이 성어는 서두르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정성이 역력하다.
晉(진)의 陳壽(진수)가 쓴 정사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에 등장하는 王粲(왕찬, 177~217)과
蔡邕(채옹, 132~192)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왕찬은 後漢(후한) 말기 建安七子(건안칠자)의
대표적 시인이었고, 채옹은 젊어서부터 해박했던
학자와 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후한 마지막 왕인 獻帝(헌제) 때 채옹은 左中郞將(좌중랑장)이란
벼슬을 지내면서 신임과 문명이 높아 그의 집에는
늘 손님들로 붐볐다.
대문 앞에는 오가는 수레들로 문전성시였다.
한 번은 대문 앞에 왕찬이라는 손님이 와 있다는 전갈을 받고
채옹은 즉각 주변 손님들을 물리치고 나가 맞았다.
왕찬이란 말을 듣고 어찌나 급히 맞으러 갔던지
신발까지 거꾸로 신었다(聞粲在門 倒屣迎之/ 문찬재문 도사영지).
다른 손님들은 고관인 주인이 맞은 왕찬이 어린 아이라 더 놀랐다.
채옹은 왕찬이 자신보다 더 훌륭하다면서
비석 위의 많은 글자들을 한 번 훑어보고
전부 다 외우는 재주를 가졌다고 설명했다.
‘손은 갈수록 좋고 비는 올수록 좋다’는 속담은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요즘이야 반가운 손님이라도 사전에 통보를 하지 않고 가면
쌍방이 당황하기 마련이다.
방문 예절을 지키면서 찾아가고 또 찾아 온 손님은
신발을 거꾸로 신지는 않더라도 정성은 다해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