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적(반)영웅시리즈 4. 문재인
by 해피 띵호와
2023. 6. 25.
적(반)영웅시리즈 4. 문재인
한국의 19대 대통령을 역임한 문재인은
출생부터 의혹에 싸인 인물이다.
먼저 자신의 책에서 밝힌 출생지를 비롯하여
가족사 자체가 조금만 관심을 갖게되면 의혹투성이다.
역대 대통령의 경우와 달리 실제로 그가
생가로 밝힌 곳도 폐쇄되었고 어린시절을
함께한 친구들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존경을 받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기에 더욱 의심스럽다.
필자가 문재인의 과거에 관해 직접 들은 것은
수년전 존경해온 대기자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이셨다.
따로 지인을 통해 만나기를 원하여 달려간 필자에게
이도형 대기자는 연로하셨지만 범접할 수 없는
풍모와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셨다.
2019년 광화문광장이 문재인정권에 저항으로
불타오르는 시점이었기에 만난지 얼마지 지나지 않아
화제는 자연스럽게 문재인에 관한 것이었고
대기자께선 놀라운 정보를 말씀하셨다.
오랜 군경력과 해외특파원 그리고 조선일보 기자로서
수집된 정보는 정보기관에 계신 분보다
더 방대하고 치밀했다.
예컨대 문재인의 부친(문용형)이 낙동강전선에서
포로로 잡힌 인민군 장교였고 그가 심문받은
군수사기관의 소재 그리고 당시 문재인의 친모로
알려진 강한옥을 만난 경위 등도 놀라웠지만
군경력상 체득한 팔도사투리에 정통하여
문재인이 구사하는 독특한 함경도 억양을 잡아내는
것과 이것을 언어학적 이론으로 체크하는 것등이었다.
결론적으로 대기자의 정보와 분석에 따르면
문재인은 남한출신이 아니라 어린시절 부친과 함께
남파되었고 양산출신 강한옥은 이를 도운 인물이었다.
또한 정황상 이들 부자의 남파시기는 1950년대 중반으로
추측되며 호적상 문제로 문재인은 나이를 속였을 것이며
결론적으로 1953년생이 아닌 1949년생이고
친모는 북한에 거주하고 노무현 당시 이산가족으로 만난
이모는 실지로는 친누나일 것이라는 추측 등이었다.
대기자님의 놀라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필자는
마침 광화문 반문집회를 주관하며 유튜브를 운영하시는
김문수 전지사님을 연결하였다.
김지사님도 이도형 발행인을 잘 아는 사이라
즉석에서 일정을 잡아 방영키로 하였다.
김문수tv를 통해 대기자님의 문재인 x 파일이 공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무엇보다 6.25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문용형을
생포한 증언도 나타났고 때마침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변호사의 판결과
맞물려 관심은 더욱 확장될 기세였다.
하지만 직후 암수술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신 발행인은
소천하셨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왔다.
남파간첩 출신이라는 문제 제기가 단순한 의혹이 아닌
확정적 사안인 것은 문재인의 행적에서
일관성있게 드러난다.
문재인의 고교(지역의 명문 경남고) 학창시절은
부적응자로 보이고 아마도 이것은 뒤늦게
취학하여 나이에 맞지않은 친구들과의 불화로 해석된다.
명문고 출신답지 않게 대학(경희대)진출은 평범했고
대학생활 역시 반체제운동으로 강제징집된 것도 그러하다.
문재인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사법연수원 성적과
본인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법조인의 로망인 판검사를
거치지 못하고 변호사로서 지방에 안착한다.
여기서 운명적으로 후일 대통령이된 판사출신
노무현을 만나 법무법인을 운영하게 된다.
노무현은 호남출신으로 6.25 당시 부친의 남로당 행적으로
경상도로 피신한 특이한 집안사를 가진 인물이었다.
결국 주변집단의 공통점을 가진 두사람은 주로 서민과
운동권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로 활약하여 명성을 얻겓된다.
노무현은 김영삼(YS)을 통해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당시 김영삼의 돌풍에 힘입어 무난히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곧 3당합당으로 노무현은 탈당하고
민주당(김대중)으로 변신한다.
YS를 결별한 노무현은 보수지역 여론에 의해
이후 연속하여 선거에서 참패하는 수모를 당하여
한때 지인들과 식당까지 개업할 정도였다.
그러나 3당합당후 대통령이 된 YS는 무능과 무지로
국정난맥으로 신음하다가 IMF를 당하고
정권교체로 이어졌다.
김대중의 집권은 노무현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김대중은 재임기간동안 축재와 햇볕정책, 한일어업협정,
노벨상 수상 등 퇴임후 자신에게 닥칠
정치보복을 감안하여 정권재창출에 사력을 다했다.
노회한 김대중의 계산에 따르면 정권재창출을 위해
민주당은 대선후보는 경상도출신이어야 했다.
이것은 절대적인 호남지원속에 영남후보를 통해
영남의 지지를 나누어 가진다는 복안이었다.
결국 김대중의 계획에 따라 노무현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택되었고 김대중정부는 대선과정에서 언론 등을 통해
대대적 지원을 하게되고 심지어 선거제도에
전산화를 통한 조작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대선 1년전 이회창은 국민 과반의 지지에 비해
3-5% 지지속에 출발했으나 역전에 성공하게 된다.
노무현의 출세는 문재인에게도 동반효과로 나타났다.
일약 청와대수석이 되었으며
왕수석으로 불리는 실세가 된다.
노무현정권은 진보인사가 주류였으나
일부 보수측 인사들도 있었다고 알려진다.
실지로 노무현은 미국비판을 상시화 하였지만
한미FTA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문재인은 극좌의 편향을 보였다고 알려지며
노무현정권 후반부는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노무현은 퇴임직후 개인비리로 사법절차를 받게되고
예상과 달리 문재인은 노무현과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사법처리중 노무현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되자
문재인은 노무현의 후계자로 진보진영의
대선후보로 격상하게 된다.
지역국회의원을 거쳐 대선후보가 되었으며
그가 출판한 책 [운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하지만 [운명]은 한국판 [ 나의 투쟁]이다.
히틀러가 옥중에서 쓴 [나의 투쟁]은 나라와 시대에 관한
온갖 생각과 이론을 말하고 있으나 실상은 거대한
거짓말과 위선으로 일관된 것이다.
[운명]에서 문재인은 자신의 종북성향을 어느정도 드러냈다.
대표적인 것으로 "흥남철수에 따라 거제에 안착했다"
"월남전에서 미국의 패배에 희열을 느꼈다"
이것은 공산당을 피해 흥남철수를 선택한 후손이
반미에 앞장서는 관례를 벗어난 것이었다.
자유민주제를 택했던 바이마르공화국이 혼란에 빠지자
히틀러가 최대정당의 대표로서 대통령으로부터
수권위임을 받아 집권당이 되었고 종국에는 전쟁과
홀로코스트로 나라를 나락에 빠트린 것 처럼
문재인도 유사했다.
그는 집권하자 끊임없이 신영복, 홍범도, 윤이상 등
반정부인사(용공주의자)들을 두둔하고 김대중, 노무현이
심어놓은 언론노조, 민노총, 전교조를 앞세워
공산화에 박차를 가한다.
문재인의 재임중 공산화정책은 국가경영에서
국가지도자가 스스로 초래할 수 있는 4대위험,
즉 부정부패, 군사외교의 참상, 자원배분의왜곡,
정국불안정을 일관하여 극대화시켰다.
부정부패의 특성상 김대중의 엄청난 비자금(13억불)이
미국에서 전모가 밝혀졌듯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부인의 상식밖의 호화사치를 비롯 가족들의 일탈이
상시화되었고,
조국, 유재수와 이재명 등 자신이 중용하고 선택한
인물들이 하나같이 부정과 축재에 혈안이 된 점은
유유상종이란 역사와 문화가 입증하는 점에서 미리 점쳐진다.
문재인은 종북행태는 군사외교분야에서 노골적이었다.
국내적으로는 2군사령관, 기무사령관 등 역대 및 당시
군지휘부를 문제삼아 사법조치 등으로 흔들고 기강을
해이시켰으며 남북합의에 의해 전방경계선을 와해시켰다.
또한 건국이후 안보의 기반인 한미동맹을 정지시키고,
일본과의 대북전략정보교류(지소미아)를 중단했다.
그가 해외언론과 정치지도자들에게 행한 일방적
종북발언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현저하게
격하시키기에 이른다.
문재인의 자원배분의 왜곡은 대표적으로 탈원전과
태양광으로 에너지정책을 퇴화시켜 엄청난 국고손실과
원전생태계 파괴로 원전수출의 경쟁력 기반을 붕괴시켰다.
반기업정책, 소득주도 성장과 포퓰리즘으로 상식과
과학을 부정하는 탈주로 성장잠재력을 훼손시켰으며
그 결과 5년간 400조의 국가부채를 증가시켰다.
문재인의 전례없는 정국불안정 야기는 본인과
정부의 일관적인 의도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초 일찌기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는 한국을
적폐로 모는 노골적인 공산화 정책이었다.
김대중ㆍ노무현과 달리 정책과 인적 풀에서
친북성향이 두드려졌다.
임종석, 서훈 등 용공주의자를 요직에 중용하고
그들을 지원했다.
마침내 집권후반 터져나온 광화문광장의 폭발에도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때마침 코로나 19가 발생하자 노골적으로 이를 악용했다.
결론적으로 문재인은 운명적으로 간첩이었고
한국인들은 간첩을 지도자로 선택한 우를 범한 것이다.
간첩왕 문재인은 북한이 심어놓은 트로이목마로서
대통령이 되자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원칙과 지성이 사라진 한국은
이미 내전중임을 해외언론은 반복하여
지적하고 있으나 정작 국내는 조용하다.
역사와 지혜가 사라진 나라는 미래가 없는 법이다.
한때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면서 일하자
(조국근대화)"는 구호가 만연했다.
군사정부하에 성장과 질서가 있었다.
민주화 이후 간첩은 사라졌고
오히려 간첩이 출세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이것은 간첩이 정부에 깊숙히 파고들어
패망한 월남의 데자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유와 미래, 정의와 법치를 위해
문재인을 처단해야하는 이유이다.
2023.4.22
하봉규교수(유엔연구소)